신 없는 신학 — 정치는 종교를 떠난 적이 없다
한국 진보 정치의
신학 해부
ABC론이 하루 만에 200만 조회를 기록한 이유
이미 존재하는 갈등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를 제안한 것이다. 내가 그 갈등을 만든 게 아니다. — 유시민, 2차 매불쇼 출연 (2026. 3. 25) · 그러나 이것이 핵심이 아니다
2026년 3월 18일, 유시민은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출연해 이른바 'ABC론'을 꺼내놓았다. 여권 지지층을 세 범주로 분류한 이 발언은 하루 만에 조회수 200만을 돌파했고, 국무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진화에 나섰으며, 여당 의원들이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단순한 정치 평론이 어떻게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가.
표면적인 해석은 많다. 지방선거를 앞둔 타이밍이 나빴다. 계파 갈등에 불을 질렀다. 당내 세력 다툼에 외부인이 개입했다. 이 해석들은 모두 맞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왜 하필 이 발언이, 이 정도의 강도로, 이 구조의 충돌을 낳았는가를 설명하려면 앞선 세 편에서 구축한 이론적 틀이 필요하다. ABC론 사태는 신 없는 신학의 작동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재 진행형 표본이다.
발언의 내용 — 무엇이 분류되었는가
먼저 발언의 내용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유시민은 여권 지지층 및 정치인·비평가들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흐름을 지탱해 온 핵심 지지층. 가치와 원칙이 우선한다.
정통 · 성스러운 계보친명을 자처하지만 이익과 생존이 목적.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돌을 던지는 사람들." 이언주 의원이 전형으로 지목됐다.
이단 · 내부의 적A와 B의 교집합. 가치와 실용을 겸비한 층. 유시민이 "많이 응원해 달라"고 당부한 그룹.
선택받은 중간자이 분류를 표면 그대로 읽으면 정치 분석의 한 시도다. 그러나 앞선 논의의 틀로 읽으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이것은 성스러운 집단과 불순한 집단을 나누는 신학적 분류 작업이다. 그리고 그 구분 기준이 — "가치냐 이익이냐" — 는 순수함과 오염이라는 종교적 언어의 세속적 번역이다.
뒤르켐의 렌즈 — 성스러운 계보의 설정
ABC론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A그룹의 정의 방식이다. A는 단순히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지탱해 온" 사람들이다.
이 계보는 정치 역사의 기술(記述)이 아니다. 뒤르켐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성스러운 계보(sacred lineage)의 설정이다. 민주화 운동에서 현재 집권 세력까지 이어지는 이 서사는, 한국 진보 정치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장 강력한 신성화된 역사 서사다. 군사독재에 맞선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 그 피와 땀의 정통한 계승자 — 이 서사에 연결되는 것이 A이고, 이 서사와 단절되거나 그것을 도구화하는 것이 B다.
뒤르켐이 말한 성/속의 구분은 바로 이것이다. 성스러운 계보에 속하는가 아닌가가 A와 B를 나누는 진짜 기준이다. 그리고 이 구분이 설정되는 순간, B는 단순한 비판 대상이 아니라 오염된 것, 불순한 것이 된다. 종교적 언어를 쓰지 않았지만, 분류의 논리는 종교적 정결(purity) 구분과 구조가 동일하다.
지라르의 렌즈 — 희생양 지목의 메커니즘
B그룹의 정의를 다시 보자. "친명이라고 내세우지만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돌을 던지는 사람들." 이 묘사는 분석이 아니라 낙인이다. 현재의 행동이 아니라 미래의 배신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집단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예방적 희생양 지목이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떠올려보자. 공동체 내부의 긴장이 축적될 때 — 조국혁신당 합당 논쟁, 검찰 개혁 난맥, 전당대회를 앞둔 계파 갈등 — 이것을 해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부의 불순물을 지목하여 제거하는 것이다. B그룹의 지목은 이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의 문제는 진정성 없는 기회주의자들 때문"이라는 서사가 공동체의 응집을 강화하면서 내부 긴장을 외부화한다.
희생양의 효과는 그것이 완전히 무고(無辜)하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다. B그룹에 이언주처럼 실제로 정치적 이력이 문제적인 인물이 포함된 것은, 오히려 메커니즘을 더 강하게 작동시킨다. "저건 맞는 말이기도 하잖아"는 동의가 낙인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후 더 광범위한 적용을 허용한다.
슈미트의 렌즈 — 사제 계급의 해석 권위 충돌
ABC론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정치 분석이 아니라 해석 권위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진정한 A와 거짓된 B를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것은 슈미트가 말한 "예외 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의 역할, 즉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가를 결정하는 권위를 자임한 것이다.
여권 지지층을 위한 의미 해석자는 유시민만이 아니다. 김어준, 이동형, 각종 친명 유튜버들이 각자의 채널에서 이 역할을 수행해왔다. ABC론의 충돌은 표면적으로는 내용 다툼이지만, 심층적으로는 누가 진보 공동체의 정통성을 판별하는 권위를 가지는가를 둘러싼 사제 계급 간의 권위 투쟁이다.
흥미로운 것은 반발 자체도 동일한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동형은 유시민이 B를 이단으로 지목한 것에 대해, 유시민 자신을 더 큰 배신 집단('문조털래유')의 일원으로 역지목하는 방식으로 응답했다. 이단 고발이 이단 고발로 응답되는 구조 — 이것은 중세 이단 논쟁의 반복이다. 양측 모두 자신이 A(정통)이고 상대가 B(이단)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보겔린의 렌즈 — 검찰 개혁이라는 내재화된 종말론
유시민이 매불쇼에 출연한 이유로 직접 밝힌 것이 있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일들을 보며 지금이 고비라는 느낌이 들었고, 공론장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를 보탤 여지가 있어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은 한국 진보 정치에서 단순한 정책 의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겔린이 말한 내재화된 종말론적 목표의 성격을 갖는다. 민주화 이후 기득권 권력 구조의 마지막 보루를 해체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서사 — 이것은 신학적 구원론을 세속화한 것이다. "지금이 고비"라는 표현은 종말론적 긴박감의 세속적 표현이다.
보겔린의 진단을 적용하면: 이 목표가 현세에서 완성 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그 완성을 방해하는 내부의 불순물(B그룹)을 제거하는 것이 더 긴박한 의무가 된다. ABC론이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촉구로 읽힌 이유가 여기 있다.
"분석 도구"라는 프레이밍의 역설
2차 출연에서 유시민은 ABC론이 "갈라치기가 아니라 분석 도구"였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면이 있다.
"이것은 신앙 고백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이다"라는 선언은, 그 내용을 반박 불가능에 더 가깝게 만든다. 신앙 고백은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믿음과 동등한 지위에서 경쟁한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 분석 틀"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된다. 종교적 판결이 과학적 판결로 포장될 때, 그것은 비판으로부터 한 겹 더 보호받는다.
이것은 현대 정치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다.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팩트"나 "분석"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의 반론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틀 지우는 것. 종교적 단죄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종교적 단죄임을 스스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는 종교적 판결은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 분석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것은 진보의 문제인가, 정치 자체의 문제인가
여기서 중요한 경계를 그어야 한다. ABC론 분석이 "한국 진보 정치가 유독 종교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오류다. 이 구조는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구조적 특성이다.
한국 보수 정치도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공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의 결합은 훨씬 더 명시적으로 종교적 언어를 동원한다. 극우 유튜버 생태계의 작동 방식 — 성스러운 건국 서사, 종북 세력이라는 이단, 태극기와 성조기라는 성물(聖物) — 은 ABC론보다 더 전형적인 신학적 정치의 표본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한국의 문제만도 아니다. 3부에서 살펴본 다섯 이론가들이 분석한 것은 파시즘, 공산주의, 미국의 대중 운동들이었다. 2020년대 미국의 마가(MAGA) 운동, 유럽의 포퓰리즘, 각국의 정체성 정치 — 이것들은 모두 동일한 구조적 패턴의 현지화된 표현이다.
| 신학적 구조 | 한국 진보 (ABC론) | 한국 보수 |
|---|---|---|
| 성스러운 계보 | DJ·노무현·문재인·이재명의 민주화 서사 | 이승만 건국, 박정희 근대화, 반공 투쟁의 서사 |
| 이단 범주 | B그룹 — 기회주의적 친명 · 반명 세력 | 종북·좌파·반국가 세력 |
| 사제 계급 | 유시민·김어준·진보 유튜버 생태계 | 보수 개신교 목사·우파 유튜버 생태계 |
| 종말론적 목표 | 검찰 개혁 완성 · 기득권 구조 해체 | 공산화 저지 · 자유 대한민국 수호 |
| 희생양 | 내부의 기회주의자 · 이재명 발목잡기 세력 | 친북 좌파 · 반미 세력 · 내부 배신자 |
이 대비가 보여주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나쁘냐"가 아니다. 구조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조가 동일하다면, 어느 쪽에 서 있든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ABC론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것이다. 신을 호명하지 않는 정치도, 성스러운 계보를 설정하고, 이단을 지목하고, 희생양 메커니즘을 가동하고, 종말론적 서사를 내장하는 순간 — 종교와 구조적으로 동일해진다. 그리고 그 구조가 "분석"이나 "과학"의 언어로 포장될 때, 비판은 더 어려워지고 작동은 더 효율적이 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이것을 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가 지지하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것의 신성화를 경계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 경계 자체가 또 하나의 교조가 되는 함정을 어떻게 피하는가.
"신학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 이 구조가 불가피한가 아닌가의 논쟁,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이 실천적으로 무엇을 바꾸는가. 마지막 편은 닫힌 결론이 아니라 열린 질문으로 끝난다.
5부 — 신학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가장 위험한 신학은 자신이 신학임을 모르는 신학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이 광신과 신념을 가르는가 — 시리즈의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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