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는 신학 — 정치는 종교를 떠난 적이 없다
종교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정치였다
religio에서 religion으로 — 개념의 탄생과 변형
종교와 정치는 원래 분리되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어쩌다 뒤섞였다. — 우리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믿는 것
이 명제는 틀렸다. 정확히 거꾸로 되어 있다. 종교와 정치는 처음부터 하나였고, 그것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역사 속에서 특수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그 시도 자체가 깊은 의미에서 정치적 행위였다. 이 시리즈는 그 이야기를 다섯 편에 걸쳐 추적한다.
출발점은 단어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종교(宗敎)'라는 말, 그리고 그 서양어 대응어인 religion — 이 단어들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개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 애초에 어떤 범주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의미로 굳어지기까지 어떤 정치적 힘이 작용했는지가 드러난다.
로마의 religio — 애초에 내면이 아니라 공공이었다
Religion의 어원인 라틴어 religio는 오늘날 우리가 "종교"에서 연상하는 것, 즉 개인의 내면적 신앙이나 초자연적 존재와의 사적인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키케로(Cicero)는 religio를 "신들과의 올바른 의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핵심은 올바름과 의례였다. 이것은 공동체가 신들의 가호(加護)를 유지함으로써 국가를 지속시키는 공적 실천이었다.
로마에서 pontifex(대제관)는 동시에 최고위 공직자였고, religio publica(공적 종교)는 원로원이 관장하는 국가 행정의 한 부서였다. 국가 의례에 참여하는 것은 세금을 내고 병역을 이행하는 것과 같은 시민적 의무였다. 신전은 재정 기록을 보관하는 국고이기도 했고, 신관(神官) 집단은 사실상 외교와 조약을 관장하는 법적 기관이었다.
로마의 religio에는 '사적 신앙'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공적 의례 참여 = 시민 자격 = religio. 이 등식에서 어느 하나를 분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religio의 반대 개념인 superstitio(미신)는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비과학적 믿음"쯤으로 이해하지만, 로마에서 이 단어는 순수한 인식론적 판단이 아니었다. superstitio는 국가가 인가하지 않은 의례, 공적 질서를 위협하는 비공인 신앙 실천을 가리키는 정치-법적 범주였다. 미신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신학적 진위가 아니라 국가 승인 여부였다.
이 맥락에서 초기 기독교가 왜 박해를 받았는지가 비로소 명확해진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은 것은 그들이 이상한 신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다신교 사회였고, 새로운 신에 대한 관용은 넓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국가의 공식 의례 — 황제 숭배, 로마 신들에 대한 제의 — 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신학적 이단이 아니라 시민 불복종이자 정치적 반역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의 역설 — 제국을 접수하며 개념도 접수하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그리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 국교로 선포한 이후 놀라운 역전이 일어난다. 어제의 superstitio가 오늘의 religio가 되고, 어제의 religio(이교 의례)가 이제 superstitio로 뒤집혔다.
이 역전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가 제국 의례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종교가 정치로부터 독립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의 융합이 그 주체만 바뀐 것이었다. 황제는 이제 기독교 신의 대리인이었고, 제국의 군사적 승리는 신앙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vera religio(참된 종교)라는 개념을 통해 처음으로 두 영역 사이의 긴장을 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civitas Dei(신의 도성)와 civitas terrena(지상의 도성)라는 정치적 틀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물음은 "종교와 정치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정치적 질서가 신의 뜻에 부합하는가"였다.
두 개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교황과 황제가 서임권(敍任權)을 두고 벌인 11~12세기의 오랜 투쟁을 우리는 흔히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의 충돌"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프레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두 권위는 단일한 그리스도교 세계 질서 내부의 위계 다툼이었지, 별개의 영역 사이의 경계 분쟁이 아니었다. "종교"와 "정치"를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개념 틀 자체가 그들에게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dīn — 번역이 곧 왜곡이다
이슬람 전통의 핵심어 dīn(دين)은 통상 "종교"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번역은 정확성을 가장한 왜곡이다. dīn은 신앙, 예배, 법, 통치, 사회 질서를 통합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 중 어느 하나를 분리해서 "종교적"이라고 부르고 나머지를 "정치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념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다.
| 개념 | 서양의 번역 | 실제 포괄 범위 |
|---|---|---|
| dīn (دين) | religion (종교) | 신앙 · 예배 · 법 · 통치 · 생활 질서 전체 |
| sharīʿa (شريعة) | religious law (종교법) | 법률 · 윤리 · 민법 · 형법 · 가족법 · 상법 |
| khalīfa (خليفة) | caliph (종교 지도자) | 정치 · 군사 · 사법 · 종교 권위의 통합된 담지자 |
이슬람 개념어의 서양어 번역은 19세기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맥락에서 형성됐다. 번역어가 원개념을 어떻게 변형시키는가는 그 자체로 정치적 문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디나 공동체에서 계시의 전달자인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었고, 외교 협상의 당사자였으며, 군사 원정의 지휘관이었다. 이 역할들은 그에게 동시에 귀속되었으며, 어느 하나가 "종교적"이고 다른 하나가 "정치적"이라는 구분은 그의 동료들에게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점은 현대 이슬람 세계에서 세속주의와 이슬람 정치운동이 충돌하는 구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서양의 시각에서는 "종교가 정치를 침범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슬람 정치운동이, 이슬람 전통 내에서는 애초에 통합되어 있던 것을 억지로 분리시키려는 외부의 시도에 대한 저항으로 경험된다. 어느 쪽이 옳은가의 문제 이전에, 두 시각이 전혀 다른 개념 지형에 서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분리는 어디서 왔는가 — 하나의 질문을 남기며
지금까지 살펴본 세 전통 — 로마, 기독교 중세, 이슬람 — 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있다. 이 전통들에서 "종교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은 처음부터 분리된 두 영역이 아니었다. 하나의 통합된 세계 질서 안에서 신성한 권위와 세속 권력은 서로를 정당화하며 공존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명하게 여기는 "정교분리" 원칙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견한 보편적 진리인가, 아니면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발명된 것인가.
답은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발명의 계기는 유럽이 겪은 가장 처참한 전쟁들이었다. 16~17세기,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신앙의 이름으로 수십 년간 서로를 학살했다. 그 폐허 위에서 탄생한 것이 "종교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는 근대적 명제였다.
"정교분리는 진리가 아니라 해법이었다" — 30년 전쟁의 폐허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어떻게 "종교"를 재발명했는지, 그리고 식민주의가 그 범주를 전 세계에 어떻게 강제 이식했는지를 추적한다.
이 발명의 역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다. 정교분리가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수많은 현상 — 이슬람 세계의 정치 갈등,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 한국 정치의 종교적 열기 — 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관점 전환을 요구한다.
2부 — 분리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었다
30년 전쟁이 만들어낸 개념, 식민주의가 수출한 범주 — 베스트팔렌에서 로크까지, 그리고 힌두교라는 단어가 영국 행정관의 사무실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딥리서치 > 신 없는 신학 - 종교와 정치, 한 몸의 두 이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필로그: 제사장들의 시대 (0) | 2026.03.27 |
|---|---|
| 5부: 신학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0) | 2026.03.27 |
| 4부: 한국 진보 정치의 신학 해부 (0) | 2026.03.27 |
| 3부: 신을 치워도 구조는 남는다 (0) | 2026.03.27 |
| 2부: 분리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었다 (1) | 202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