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역사의 운율과 체제 전환



레짐 아 브니르

Régime à Venir - 도래할 체제에 관한 고찰



Supplementary Article

보론: 역사의 운율과 체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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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맞춘다."
- 마크 트웨인(전해지는 말)



도입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을 무너뜨렸다. 귀족과 왕권이 지배하던 낡은 질서가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2026년 1월 24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재향군인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Alex Jeffrey Pretti)가 연방 이민단속국(ICE) 요원의 총에 사망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였고, 전과가 없었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참전용사들을 돌보는 의료인이었다.


두 사건 사이에는 237년의 시차가 있다. 하나는 유럽 대륙의 구체제 붕괴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미국의 일개 단속 사건이다. 그러나 그 운율은 기묘하게 닮아 있다.


이 보론은 자본주의가 무엇과 싸워 탄생했는지, 그리고 현재 무엇을 닮아가고 있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ICE 사건은 단순한 과잉 단속이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체제 전환의 징표다. 그 연결고리를 따라가 보자.




1. 자본주의는 무엇과 싸웠는가


1-1. 자본주의의 적: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20세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훨씬 이전에 태동했다. 18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타파하고자 했던 직접적인 적은 봉건제(Feudalism)중상주의(Mercantilism)였다.


봉건제의 한계는 명확했다. 토지에 귀속된 농노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었고, 수공업자들은 길드(Guild)라는 폐쇄적인 조직에 갇혀 있었다. 신분이 태생으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혁신과 경쟁은 불가능했다.


중상주의의 폐해 역시 분명했다. 국가가 경제의 모든 영역을 통제했다. "국부(國富)는 금과 은의 양으로 결정된다"는 믿음 아래,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며 거대 상인들에게 독점권을 부여했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통해 비판한 것이 바로 이 체제였다.


자본주의는 이 두 체제를 무너뜨리며 등장했다. 그 약속은 명확했다: 자유, 경쟁, 유동성.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통제가 아닌 시장으로, 고착이 아닌 유동으로.



1-2. 전환의 역사적 징표


봉건제와 중상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로 이행하게 된 결정적 사건들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장면들이다.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 16~18세기)은 경제적 전환의 시작이었다. 영국 지주들이 양모업의 수익성을 발견하고 공유지를 사유화하자, 땅에 묶여 있던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유입되었다. 신분적 구속에서 '해방'된(혹은 '축출'된) 이들은 공장의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 과정이라고 불렀다.


명예혁명(1688)과 프랑스 대혁명(1789)은 정치적 전환의 상징이다. 영국 의회가 왕의 과세권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내 재산은 왕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사유재산권이 확립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앙시앵 레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길드와 같은 봉건적 잔재를 폐지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하고 고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선포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은 사상적 전환의 독립선언서였다. 중상주의의 국가 통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적 부를 창출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는 국가가 시장에서 손을 떼고 '치안'에만 집중하라는 야경국가론의 기초가 되었다.



1-3. 전환의 공통 동인: "새로운 술을 낡은 부대에"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동인은 "새로운 술(성장한 경제력)을 낡은 부대(구체제의 시스템)에 담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첫째, 기술적 동인이 있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시장이 전 세계로 넓어졌고, 면직물 공업 등에서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기존의 길드 체제로는 압도적인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 계급적 동인이 작동했다. 상업과 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부르주아 계급은 경제적으로는 왕보다 부유해졌지만, 신분제 아래에서는 여전히 하층민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할 법적 장치(사유재산권)와 정치 참여의 발언권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셋째, 사상적 동인이 흐름을 바꿨다. 공동체나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가치관이 '개인의 합리성'으로 이동했다. 국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보다,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체제 전환은 "고착화된 자원을 유동화하려는 시도"였다. 땅에 묶여 있던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하고(인클로저), 신분이 아닌 능력과 계약으로 노동력을 이동시키고(봉건제 폐지), 국가 보관함 속에 잠자던 금·은을 시장의 유통 화폐로 전환했다(중상주의 비판).




2. 자본주의는 무엇을 닮아가는가


2-1. 후기 자본주의의 운율


초기 자본주의가 타파했던 봉건제와 중상주의의 특징들이 현대에 부활하고 있다. 최근 경제학계는 이를 '신중상주의(Neo-mercantilism)''테크노 봉건주의(Techno-feudalism)'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구분 봉건제/중상주의 (말기) 후기 자본주의 (현대) 공통된 운율
부의 원천 토지 및 독점권 기반 '지대' 플랫폼 및 지적재산권 '수수료' 지대 추구 행위
계층 구조 혈통에 의한 세습 자산(자본)에 의한 세습 사회적 유동성 실종
권력 형태 절대왕정과 독점 상인의 결탁 초국적 기업과 국가의 결탁 정경유착의 심화
통제 방식 물리적 억압과 신권 정치 알고리즘 통제와 공권력 과잉 체제 순응 강요


2-2. 세 가지 운율의 구체적 증거


경제적 운율: 이윤에서 지대로


초기 자본주의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이윤(Profit)'에 집중했다면, 후기 자본주의는 이미 가진 자산을 통해 통행세를 받는 '지대(Rent)'에 집착한다.


봉건제 말기, 영주들은 영토 내의 도로, 방앗간, 시장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농민들에게 과도한 사용료를 징수했다.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빅테크 플랫폼(애플, 구글, 아마존 등)이 디지털 영토를 장악하고, 그 위에서 장사하는 기업들에게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를 '디지털 지대'라고 부른다. 과거 농노가 영주의 땅에서 일하고 생산물의 일부를 바쳤듯, 현대인은 페이스북이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 무료로 데이터를 생산해 제공하고, 그 대가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한다. 기업은 이 데이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지만, 정작 생산자인 대중에게는 그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혁신적인 생산보다는 '길목을 지키고 앉아 통행세를 받는 구조'의 부활이다.



사회적 운율: 신분의 귀환


자본주의는 신분제를 깨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유동성을 공급하며 탄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산의 대물림이 신분을 결정하고 있다.


봉건제 말기, 혈통에 의해 토지가 세습되며 농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영주가 될 수 없는 '닫힌 사회'였다.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수저 계급론'에서 보듯,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부동산, 주식)의 성장 속도가 압도적이 되면서 부모의 자산이 개인의 계급을 결정하는 '신자산 계급사회'로 진입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r > g (자본수익률 > 경제성장률)라는 공식으로 이를 설명했다. 자산을 가진 자는 노동 없이도 부가 증식되지만, 노동만으로는 자산을 따라잡을 수 없다. 법적인 신분제는 없으나, 경제적 장벽에 의한 '실질적 신분제'가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1부 '유동성의 역설'이 다룬 핵심 문제다. 돈은 넘치는데 왜 가난한가? 통화량 팽창이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서, 자산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벌어진다. 사회적 유동성은 실종되고, 계층은 고착된다.



정치적 운율: 정경유착과 국가 폭력의 사유화


중상주의는 국가와 거대 상인이 결탁해 독점권을 유지했다. 최근의 흐름 역시 이와 매우 닮아 있다.


중상주의 말기, 국가는 '동인도 회사' 같은 특정 기업에 독점권을 주고 군대(물리력)를 동원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했다.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거대 기업의 로비가 법안을 만들고, 국가의 공권력이 시스템 유지라는 명목하에 시민의 안전보다 '체제 순응'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는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전략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수출입을 통제한다. 이는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여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17~18세기의 중상주의적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공공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가 권력이 "특정 계급이나 시스템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이 ICE 사건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다.




3. ICE 사건: 책임 전가의 메커니즘


3-1. 사건의 전말


2026년 1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후기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는 재향군인(VA) 병원에서 참전용사들을 돌보던 중환자실 간호사이자 미국 시민권자였다. 전과가 없었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의료인이었다. 그가 Operation Metro Surge(연방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 중 시위에 참여했다가 ICE 요원의 총에 사살되었다.


ICE는 "요원을 학살하려던 무장 용의자"라고 발표했으나,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과 목격자 증언은 "비무장 상태에서 다른 시위자를 돕던 중 등 뒤에서 사살됨"을 가리켰다. 미네소타 주정부는 연방 정부의 증거 은폐 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17일 전 발생한 러네이 굿(Renee Good) 사살 사건에 이은 연속적인 시민 사살이었다. 또한 미니애폴리스에서는 Native American 4인을 이민자로 오인하여 구금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원주민을 이민자로 취급한 것이다.



3-2. 표면과 본질: 구조적 문제의 책임 전가


표면적으로 ICE의 임무는 불법 이민자 단속이다. 그러나 이민자는 미국의 일자리 문제, 소득 격차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미국의 일자리 문제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한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Offshoring)
1980~2000년대, 자본가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제조업을 중국, 멕시코 등으로 이전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대규모 일자리가 소멸했다. 책임 주체는 다국적 기업과 자본가 계급이다.


산업 구조의 전환(Structural Shift)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기술 산업으로 전환이 일어났다. 숙련 노동자의 기술 미스매치(skill mismatch)가 발생하고, 중산층 일자리가 고소득 전문직과 저소득 서비스직으로 양극화되었다.


자동화와 AI
생산성 향상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2부 '생산요소 투입의 종말'이 다룬 바로 그 문제다. 노동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정치적 서사는 다르게 흘러간다:


실제 인과관계:
자본의 이동 → 일자리 감소 → 소득 격차 심화 → 재분배 실패

정치적 서사:
이민자 유입 → 일자리 경쟁 → 임금 하락 → 이민 통제 필요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하면서 특정 감정들이 극단적으로 강화된다:


공포: "내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혐오: "저들이 우리의 복지를 빼앗는다"
배제: "저들을 쫓아내야 한다"


이는 4부 '생태적 적응'에서 다룬 극단화, 부족주의, 배제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구조적 해법이 없을 때, 사람들은 "우리 vs 그들" 구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적응한다.



3-3. 레짐 아 브니르 시리즈와의 통합


ICE 사건은 1부부터 5부까지의 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실증 사례다.


1부 (유동성의 역설)와의 연결: 통화량 팽창 속에서 자산 격차가 심화된다. 격차의 원인은 통화정책과 자산 구조인데, 책임은 이민자에게 전가된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기제다.


2부 (생산요소 투입의 종말)와의 연결: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자동화로 인한 노동 없는 성장. 일자리 감소의 진짜 원인은 자본의 이동과 기술 변화다. 이민자는 원인이 아니라 희생양이다.


3부 (해법 없는 논쟁)와의 연결: "이민 통제"는 전형적인 증상 치료다.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제시되는 해법은 구조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는다. 도그마와 기존 패러다임의 속박 속에서, 가시적인 적을 만들어 분노를 분산시킬 뿐이다.


4부 (생태적 적응)와의 연결: 공포와 혐오를 통한 집단적 적응. "우리 vs 그들" 구도 강화. 배제의 전략. 구조적 해법이 없을 때 개인과 집단이 선택하는 적응 방식이다.


5부 (귀결점)와의 연결: 국가 폭력의 시민 대상 전환은 체제의 말기적 증상이다. 봉건제 말기의 농민 탄압, 중상주의 말기의 시민 억압과 운율을 맞춘다. 이것이 도래할 체제(Régime à Venir)가 필요한 이유다.




4. 체제 전환의 징표


4-1. 임계치의 도달


역사적으로 체제 전환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가 아니라, '기존 체제의 폐단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임계치)'에 도달하여 대다수 구성원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할 때 폭발했다.


ICE 사건이 보여주는 임계치의 4가지 신호:


희생자의 상징성


프레티는 단순한 시위자가 아니라, 재향군인 병원에서 참전용사들을 돌보던 중환자실 간호사이자 전과 없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국가 요원이 사살했다"는 사실은 체제의 보호를 받아야 할 '선량한 다수'에게 공포와 분노를 동시에 안겼다. 지난 1월 7일 러네이 굿 사살 사건 이후 17일 만에 발생한 연속적인 사건이라는 점이 대중의 인내심을 임계치로 밀어붙였다.


정당성의 붕괴


"안보"라는 명분이 시민 사살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왕권신수설이 통했지만, 계몽주의 사상이 퍼지면서 "왜 저 사람이 나의 주인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던 것과 같다. 지배층의 부패나 무능이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될 때, 대중의 분노는 체제 전복의 에너지로 바뀐다.


권력의 충돌


미네소타 주정부가 연방 정부의 증거 은폐 시도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기존 연방 체제의 '치안 유지 방식'이 더 이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강력한 신호다. 연방 정부 대 주정부, 증거 은폐 대 진실 공개의 구도는 과거 왕의 과세권과 의회의 재산권 투쟁을 연상시킨다. 영국 명예혁명 당시 의회가 왕의 과세권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과 운율을 맞춘다.


진실의 민주화


과거 중상주의 시절에는 정보가 권력층에 독점되었으나, 현재는 시민들이 찍은 영상 데이터가 구체제의 설명을 반박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ICE는 "요원을 학살하려던 무장 용의자"라고 발표했으나, 시민 촬영 영상과 증언은 "비무장 상태에서 등 뒤에서 사살됨"을 가리킨다. 이 '진실의 간극'이 대중으로 하여금 시스템 전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4-2. 역사적 평행선


시대 체제 말기적 증상 전환의 계기
18세기 프랑스 앙시앵 레짐 제3계급(인구 98%)에 세금 전가, 특권층 면세. 흉작으로 빵값 폭등 프랑스 대혁명 (1789)
17세기 영국 절대왕정 왕의 자의적 과세와 재산 수탈. 사유재산권 위협 명예혁명 (1688)
21세기 미국 후기 자본주의 자본의 책임을 노동자/이민자에 전가. 국가 폭력의 시민 대상화 ?

프랑스 대혁명 직전, 구체제(Ancien Régime) 아래에서 제3계급(평민)은 인구의 98%를 차지했지만 모든 세금을 부담했다. 반면 특권층은 면세 혜택을 누렸다. 여기에 흉작으로 빵값이 폭등하자, "굶어 죽느니 싸우다 죽겠다"는 생존의 위기가 분노를 폭발시켰다.


현대의 불평등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신호는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기본적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 박탈에서 나타난다. ICE 사건은 그 분노가 가시화되는 지점이다.


역사적으로 운율이 이토록 비슷하게 맞물릴 때, 항상 그 체제는 '전환'을 맞이했다.




5. 구조적 문제는 희생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5-1. 책임 전가의 한계


이민자를 모두 추방해도 제조업은 돌아오지 않는다. 국경을 봉쇄해도 자동화는 계속된다. 단속을 강화해도 자산 격차는 벌어진다.


구조적 문제는 희생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적 해법은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힌다. 3부 '해법 없는 논쟁'이 다룬 바와 같이,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제시되는 해법들은 모두 한계를 갖는다.


유동성 공급으로 유동성 과잉을 풀 수는 없다. 재분배 없이 성장으로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이민 통제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법이 반복된다. 왜인가?


기존 패러다임을 유지하려는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꾸는 것은 기득권의 이익을 침해한다. 따라서 증상 치료에 머물고, 책임을 전가하며, 가시적인 적을 만들어 분노를 분산시킨다.



5-2. 체제 전환의 필요성


ICE 사건은 단순한 과잉 단속이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1. 경제 구조 개혁 없이 사회 통제만 강화: 제조업 이전과 자동화라는 구조적 문제는 방치한 채, 이민자 단속만 강화한다.


2. 재분배 실패를 폭력으로 억압: 자산 격차 심화와 계층 고착이라는 재분배 실패를 해결하지 않고, 그에 대한 불만을 공권력으로 억압한다.


3. 정당성 상실을 물리력으로 대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간호사를 국가 요원이 사살"하는 상황은 체제의 정당성 상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물리력으로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이것이 "레짐 아 브니르(Régime à Venir)", 즉 도래할 체제가 필요한 이유다.


과거 자본주의가 "유동성"을 무기로 구체제를 무너뜨렸듯이, 이제는 거대해진 자본주의 자체의 "고착화"를 깨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토지의 유동화가 인클로저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유동화해야 하는가? 신분의 유동화가 봉건제 폐지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유동화해야 하는가? 부의 유동화가 중상주의 비판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을 유동화해야 하는가?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질문은 분명하다.




맺음말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맞춘다."


봉건제의 영주는 땅을 독점했고, 현대의 플랫폼은 데이터를 독점한다.
중상주의의 왕은 과세권으로 재산을 빼앗았고, 현대의 체제는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노동의 가치를 빼앗는다.
구체제의 국가는 농민을 탄압했고, 현대의 국가는 시민을 사살한다.


운율이 이토록 닮아갈 때,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절을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쓰러진 간호사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도래할 체제를 향한 첫 음표가 될 것인가.


우리는 그 운율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러나 끝자락은 동시에 시작점이기도 하다. 과거 계몽사상이 처음에는 극소수 지식인의 생각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확산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자각을 낳고, 결국 혁명으로 이어졌듯이 말이다.


"이 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확산될 때, 누군가는 이를 체계적 사상으로 만들고, 누군가는 이를 자신의 이익과 연결하며, 전환의 동인들이 형성될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 확산은 선형적이지 않을 것이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인식의 전환은 소수 철학자의 계몽이 아니라, 창발적이면서도 급격한 동시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 곳에서 시작된 각성이 네트워크를 통해 증폭되어, 예상보다 빠르게 임계 질량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 체제 전환의 주역은 물적 자산을 축적한 부르주아였다. 그러나 지금은 데이터가 자산인 시대다. 인식의 공유 그 자체가 전지구적 동시성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곧 막대한 권력이 된다. 플랫폼이 데이터로 지대를 취하려는 순간, 그 데이터를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체제 전환의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역사가 운율을 맞춘다면, 그 다음 절은 이미 쓰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림 1. 체제 전환의 가능한 경로들: 2026년 1월 현재를 기점으로 한 미래의 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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