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론 일색의 기이한 풍경

요즘 스테이블 코인 관련 기사나 전문가 의견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모두가 한결같이 낙관적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미래다", "뒤처지면 안 된다", "혁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논조가 지배적이다. 마치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이런 일방적 찬양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추적 불가능한데 정확한 수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모순이 있다. 언론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거래는 익명성과 추적의 어려움이 특징"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한국 무역의 10%가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루어진다" "중소기업 30%가 스테이블 코인으로 외국인 근로자 급여를 지급한다"는 식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추적이 어렵다면서 어떻게 정확한 비율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근본적 모순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기이하다. 마치 모든 사람이 논리적 사고를 멈춘 채 "스테이블 코인은 좋은 것"이라는 전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세무행정의 전면 붕괴

더 심각한 문제는 세무행정 시스템 전체의 근본적 한계다. 관세청이 언더밸류(under-value, 과소신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국가가 과연 존재하는가?
 
전통적으로 관세 당국은 은행 송금 내역, 신용장, 무역금융 기록을 통해 실제 대금 지급을 추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더(USDT) 같은 스테이블 코인으로 거래하면 이 모든 추적망이 무력화된다.
 
관세 회피 시나리오:

  • 실제 거래가: 100만 달러
  • 세관 신고가: 50만 달러
  • 차액 50만 달러를 테더로 별도 송금
  • 관세청은 이를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출액 자체도 속일 수 있다.
 
매출 조작 시나리오:

  • 공식 계약서: 50만 달러 (세무서 신고용)
  • 실제 거래: 100만 달러 (테더로 차액 정산)
  • 회계장부상 매출: 50만 달러만 기록
  • 법인세, 부가세 모두 절반만 납부

은행을 거치지 않는 테더 거래는 외환거래 기록도 남지 않아 자금 유입을 추적할 방법이 없다. 해외 거래상대방과 공모하면 거의 완벽한 매출 은닉이 가능하며, 세무조사로도 적발이 어렵다.
 
미국 CBP도, EU 세관당국도, 싱가포르도 개별 거래의 실시간 검증은 불가능하다. 결국 언더밸류가 너무 쉬워져서 관세 회피가 일상화되고, 매출 조작까지 더해져 정직하게 세금 내는 기업만 바보가 되는 구조다.


주머니 속 케이먼 제도, 횡령도 스마트하게

한마디로 모든 국민이 주머니 속에 케이먼 아일랜드를 갖고 다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기존 조세피난처가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민주화된 조세피난처"를 제공한다.
 
횡령도 마찬가지다. 회사 자금을 테더로 전환해서 해외 개인지갑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몇 시간이면 끝난다. 기존 해외 계좌 개설, 송금 절차, 외환신고 등의 복잡한 과정이 모두 생략되면서 범죄의 진입장벽이 현저히 낮아진다.
 
더 심각한 것은 각국이 아무리 규제를 강화해도 콜드월렛개인지갑 간 직접 거래만큼은 기술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중앙집중식 신원인증을 콜드월렛에 강제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EU나 미국도 거래소에서 개인지갑으로의 출금 시점에서만 제한적 확인을 할 뿐이다.
 
한마디로 모든 국민이 주머니 속에 케이만 아일랜드를 갖고 다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기존 조세피난처가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민주화된 조세피난처"를 제공한다. 횡령도 마찬가지다. 회사 자금을 테더로 전환해서 해외 개인지갑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몇 시간이면 끝난다.
 
더 심각한 것은 각국이 아무리 규제를 강화해도 콜드월렛과 개인지갑 간 직접 거래만큼은 기술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중앙집중식 신원인증을 콜드월렛에 강제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의 이해 부족과 미디어의 바이럴 중독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스테이블 코인의 기술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혁신적"이라는 수식어를 남발한다. 경제학, 세법, 국제무역 등 관련 분야에 대한 통합적 이해 없이 각자의 좁은 영역에서만 발언한다.
 
언론은 더 심각하다. "스테이블 코인이 국가 경제를 뒤흔든다"는 자극적 헤드라인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세금 추적이나 관세 부과의 한계를 다룬 심층 기사는 거의 없다. 화제성과 클릭 수에만 매몰된 미디어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를 외면한다.


세금 시스템의 완비? 어느 나라에서?

스테이블 코인 옹호론자들은 "선진국들도 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루어진 상품 거래에 대해 투명하고 정확한 세금 부과 시스템을 완비한 나라는 어디인가?
 
미국도, EU도, 싱가포르도 여전히 실험 단계다. 블록체인 분석 툴과 KYC 규제를 동원해도 소규모 개인 거래나 지갑 간 직접 거래는 추적이 어렵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완성된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뒤처지면 안 된다"는 논리는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조세정의의 근본적 위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세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구조적으로 "선택적 투명성"만을 제공한다. 숨고 싶은 사람은 숨을 수 있고,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만 노출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부유층과 기업은 세금 회피 경로를 확보하는 반면, 일반 근로자들은 여전히 원천징수로 세금을 정확히 납부해야 한다.
 
세금 부담이 역진적으로 변화하고, 국가 재정의 핵심 세원이 추적 불가능한 영역으로 이동한다. 관세 수입까지 대폭 감소하면서 국가 재정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뒤늦은 대응, 하지만 여전한 한계

이런 문제들을 인식한 일부 국가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다. OECD의 CARF(암호자산 보고 프레임워크)와 EU의 DAC8이 2026년부터 시행되어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거래 정보의 자동교환을 의무화한다. 미국도 GENIUS Act 등 포괄적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을 추진 중이며, 브라질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사용과 탈세 행위의 상관관계를 실증 연구했다.
 
하지만 이런 대응들도 근본적 한계가 있다. 거래소나 서비스 제공업체를 통한 거래만 추적 가능하며, 개인지갑 간 직접 거래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 보고 의무화와 실제 거래가격 검증은 완전히 별개 문제라는 점이다.
 
"보고 의무"는 늘렸지만 "검증 능력"은 여전히 부족한 미봉책 수준이다.


회피되는 근본 질문들

스테이블 코인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 계속 회피되고 있다:

  • 세금을 제대로 낼 수 없는 시스템을 왜 도입해야 하는가?
  • 실제 거래가격을 확인할 수 없는 결제 시스템을 왜 허용해야 하는가?
  • 일부만 세금 회피 수단을 갖는 것이 공정한가?
  • 관세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혁신이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들 대신 우리가 듣는 것은 "기술 발전", "글로벌 트렌드", "경쟁력 확보" 같은 추상적 수사뿐이다.


맹목적 추종의 위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현재의 논의 방식은 위험하다. 비판적 사고 없이 "미래 기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근본적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기술적 장점을 나열해도, 조세정의와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충돌하는 시스템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관세는 단순히 세금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주권의 문제인데, 이를 무력화시키는 시스템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진보일까?


참고 : 인간이라는 신화 (최종)-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은 가짜다 中 마지막 섹션  '생각해 볼 문제: 비트코인 세대의 역설'

 

인간이라는 신화 (최종)-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은 가짜다

ChatGPT는 당신보다 창의적이다.알파고는 당신보다 직관적이다.네비게이션 앱은 당신보다 길을 잘 찾는다.Netflix는 당신보다 당신의 취향을 잘 안다.인스타그램은 당신보다 당신이 좋아할 사람을

strcur.tistory.com


스테이블 코인이 정말 미래라면, 적어도 이런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성찰과 답변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맹목적 찬양과 일방적 추종만으로는 건전한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스테이블코인 기업 서클기업공개를 통해 상장가 대비 5배 이상 급등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