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이익을 구분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인 양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사익을 좇는 사람을 나누고, 전자를 진정한 정치 세력으로, 후자를 불순한 기회주의자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구분은 생각보다 훨씬 낡고 허술하다.

이익을 빼면 정치에 남는 게 없다


애초에 이익을 제거하면 정치에서 남는 것이 없다. 정치는 희소한 자원과 권력을 누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다. 사적 가치도 존재하고 공적 이익도 존재한다. 가치와 이익은 서로 반대편에 놓인 개념이 아니라, 각각 사적/공적 차원과 교차하는 전혀 다른 축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무시한 채 가치 대 이익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밀면, 논리가 아니라 진영 선언이 된다.

가치는 두 종류뿐이다 — 이익이거나, 상호주관적 실재


가치라고 불리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 정량화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빈곤율 감소, 수사권의 범위, 재벌 지분율 같은 것들이 여기 해당한다. 측정 가능하고 배분 가능한 순간, 그것은 이익의 언어로 다루는 것과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정량화 가능한 가치는 곧 이익이다.

둘째, 정량화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민주화의 정통성'이나 '역사 바로잡기' 같은 것들이 여기 해당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종류의 믿음을 상호주관적 실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객관적 실재처럼 믿음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믿음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돈이다. 돈은 정량화가 가능하고 이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호주관적 실재이기도 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처럼, 집단적 신뢰가 붕괴하는 순간 돈은 종이 쪼가리가 된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정량화 가능성과 상호주관적 실재성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가치 중에서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전부 상호주관적 실재다.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제3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주관적 실재를 기준으로 삼으면 동어반복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상호주관적 실재인 가치를 정치적 판별의 기준으로 사용하면,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사람이 진짜"라는 동어반복에 빠진다. 가치가 집단 내부의 믿음에 의존하는데, 그 가치로 집단 내부의 진위를 가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투쟁이 끝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호주관적 실재는 언제나 해석 논쟁을 부른다. 누가 그 가치를 더 잘 구현하고 있는지를 판별할 객관적 척도가 없으니, 논쟁은 수렴하지 않고 상징 전쟁으로 흘러간다.

이익 중심이 절차와 실질을 일치시키기 쉽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가치를 이익 중심으로 다루는 것이다. 만능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익 충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익의 언어는 충돌 구조를 가시화하고, 누구의 이익이 얼마나 침해되었는지를 사후에 검증할 수 있게 해준다. 절차가 실질과 일치했는지를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계량화할 수 없는 상호 주관적 실재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상위 가치로 인정받는 것들이 존재하고, 이익으로 완벽한 치환이 불가능한 가치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존엄, 절차적 공정성...물론 그 어떤 가치보다 숭고한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들도 존재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으로 측정되지 않으면 그 숭고한 가치를 실현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렇기에 우리 헌법에는 이러한 상징적 가치 실현의 근본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위 제37조 제2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본다면, 기본권조차 공적 이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되 그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적 이익이 우선적 지위를 가지면서도, 가치의 본질적 핵심은 이익 계산 바깥에 남겨두는 구조다. 그러나 그 경계가 어디인지는 헌법도 확정하지 못했다. 상호주관적 실재는 집단적 믿음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본질의 경계를 법조문으로 확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법이 이 긴장을 해소하지 못하고 내장한 이유다.

그러나 가치의 언어는 이러한 고심을 무시한다. "우리는 가치를 위해 싸운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집단의 실질적 이익 추구가 검증 대상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가치가 정당성의 언어인 동시에 면죄부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이익을 배제한 상징투쟁은 그래서 답이 없다. 측정할 수도, 타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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