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보수주의자라면, 가장 존경하는 경제학자 3명을 꼽아보라.
 
아마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밀턴 프리드먼일 것이다.
 
자유시장의 아버지, 고전 자유주의의 대표, 신자유주의의 교부.
 
그런데 이 세 사람에게는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 모두 현재 '좌파 정책'이라고 불리는 것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 모두 모든 시민의 최소 생계 보장이라는 개념을 지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2025년 애덤 스미스가 본다면

상상해보자. 애덤 스미스가 현재 한국 사회를 본다면 무엇이라 할까?
 
재벌 독과점 구조를 보고: "이것은 내가 비판했던 동인도회사보다 더 교묘한 독점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고: "개인사업자로 분류해서 노동자 권리를 박탈한다고?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착취다."
 
교육비 문제를 보고: "교육은 정부가 제공해야 할 공공재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극심한 불평등을 보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은 시장 실패의 증거다."
 
스미스 사상의 현대적 함의 : 애덤 스미스는 교육 공공재와 공정한 시장 참여를 통해 모든 사람이 경제적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의 통찰은 현대의 기본소득 논의와 놀라운 연결점을 가지며, 생존 위협 없는 시장 참여가 진정한 자유시장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존 스튜어트 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

스미스의 철학적 후계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를 더 명확히 했다.
 
밀의 핵심 통찰:

 
"진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아야 한다.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적 번역: 생존 위협 상태에서는 공정한 시장 참여도, 민주적 의사결정도 불가능하다.


밀턴 프리드먼의 Negative Incom Tax(NIT) 제안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밀턴 프리드먼.
 
신자유주의의 아버지가 제안한 NIT를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프리드먼의 Negative Income Tax(NIT, 1962년):
 
소득이 일정 기준점 이하로 떨어지면, 세금을 내는 대신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시스템
 
프리드먼의 실제 계산 예시:

  • 소득 기준점: 연 $40,000 (NIT 비율 50% 가정)
  • 연 $20,000 소득자 → 정부가 $10,000 지급
  • 연 $35,000 소득자 → 정부가 $2,500 지급
  • 소득 $0 → 정부가 $20,000 지급

1962년 프리드먼의 원래 제안: 소득이 없는 개인에게 $300 지급
 
후에 수정된 제안: 4인 가족이 다른 소득이 없을 때 정부로부터 $1,500 지급
 
이것의 흥미로운 점: NIT 자체가 소득에 따른 선별적 지급 시스템이면서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보편적 접근을 시도한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NIT: 보수들이 모르는 진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기본소득은 반시장적이다. 선별복지가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그들이 존경하는 프리드먼이 제안한 네거티브 인컴 택스를 자세히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프리드먼의 NIT 제안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
 
프리드먼은 NIT의 5가지 장점을 제시했다:
1) 개인이 최선으로 여기는 현금 지원
2) 일반적인 노령 급여나 농업 프로그램이 아닌 소득을 통한 직접적 빈곤 해결
3) 당시 존재하던 모든 지원 프로그램을 대체하는 하나의 보편적 프로그램
4) 주로 낮은 행정비용으로 인해 기존 프로그램보다 이론적으로 더 낮은 비용
5) 최저임금법이나 관세처럼 시장을 왜곡하지 않음
 
Adam Smith Institute의 충격적 분석:
그런데 보수주의 싱크탱크인 Adam Smith Institute가 NIT와 기본소득을 비교 분석한 결과는 더욱 놀랍다:
 
NIT의 급진적 특성:

  • "NIT는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 "분배 관점에서 NIT가 빈곤 퇴치에 더 효과적이다"
  • "NIT에서는 소수의 가난한 개인들이 중간·고소득 납세자들의 지원을 받는다"
  • "기본소득보다 NIT가 저소득층의 노동공급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기본소득의 온건한 특성:

  • "기본소득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혜택이 상대적으로 낮다"
  • "낮은 한계세율로 저소득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장려한다"
  • "빈곤 해결 효과는 NIT보다 낮다"

역설적 결론: 보수주의 기관조차 인정하는 사실은 NIT가 기본소득보다 더 강력한 재분배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NIT의 현실적 문제들:

  • 개별 신청자별 필요와 자원에 대한 신중한 조사를 무시함으로써 정부가 대규모 사기, 속임수, 사취에 문을 열어준다
  • 현재 복지 시스템에서도 일부는 80% 이상의 한계세율에 직면하는데, 이는 "월급을 받는 부자들도 그렇게 높은 한계세율을 내지 않는다"
  • 모든 국민의 정확한 소득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는 행정적 복잡성

최종 아이러니:

  • 이론적으로: NIT가 기본소득보다 더 급진적인 재분배 효과
  • 현실적으로: NIT가 기본소득보다 구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스템
  • 정치적으로: 기본소득은 보편적 혜택으로 정치적 공격에 더 강하고, NIT는 조건부 혜택으로 나중에 삭감되기 쉽다

결론: 프리드먼의 NIT는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했고, 기존의 모든 소득보장 프로그램을 대체하여 순 절약을 달성하려 했다.
그런데 정작 기본소득을 "좌파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보수들은 프리드먼이 더 급진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케인즈의 경고: 자본주의 동맥경화

여기서 또 다른 거장의 통찰을 빌려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MPC)이론: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비 비율은 감소한다."

 
 
쉬운 말로 번역하면:

  • 월 100만원 버는 사람 → 95만원 소비 (소비율 95%)
  • 월 1,000만원 버는 사람 → 600만원 소비 (소비율 60%)
  • 월 1억 버는 사람 → 3,000만원 소비 (소비율 30%)

결과: 부자가 많아질수록 전체 사회의 소비는 줄어든다.
 
 
프리드먼의 통찰과 결합하면:
 
자본주의를 그대로 방치하면 경제의 동맥경화가 일어난다.

  1. 부의 집중 → 소비 감소
  2. 소비 감소 → 수요 부족
  3. 수요 부족 → 투자 위축
  4. 투자 위축 → 경제 성장 정체

마치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액순환이 막히는 것과 같다.
 
해법: 하위 계층에게 돈을 지급해서 소비를 늘리고 경제 순환을 복원하는 것.
 
이것이 프리드먼이 NIT를 주장한 진짜 이유다.
 
반시장적이 아니라 더 건강한 시장을 위해서.


재정 승수 효과(fiscal multiplier): 1원이 3원이 되는 마법

프리드먼의 NIT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재정 승수 효과 (Fiscal Multiplier Effect)
 
간단한 계산: 정부가 하위 계층에게 100만원을 지급한다면?
1차 효과: 100만원 전액 소비 (생존 필수품)
2차 효과: 상점 매출 100만원 증가 → 점주가 70만원 추가 소비
3차 효과: 70만원 매출 증가 → 50만원 추가 소비
4차 효과: 50만원 매출 증가 → 35만원 추가 소비
총 경제 효과: 100 + 70 + 50 + 35 + ... = 약 300만원
 
반대로 부자에게 100만원을 준다면?
1차 효과: 20만원만 소비 (나머지는 저축)
총 경제 효과: 약 60만원
 
결론: 같은 돈이라도 누구에게 주느냐에 따라 경제 효과가 5배 차이난다.
 
흥미로운 점: NIT와 기본소득 모두 공통적으로 MPC와 승수효과를 통해 지지받는 이론이다.

물론 프리드먼 본인의 주된 관심사는 빈곤 해결과 행정 효율성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하위 계층에 대한 현금 지급은 경제 전체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승수효과의 한계 : 고소득자 비중이 높을수록 사회 전체의 승수효과는 수학적으로 약화된다.
승수효과의 비판자들의 지적을 무색케 하는 특이한 점은, 그 한계 자체가 재정 지출 수혜를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역설을 내포한다는 사실이다.
이 역설에 대해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증명을 깊이 할수록 반론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늪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은밀한 합의점

이제 소름끼치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애덤 스미스: 모든 사람의 경제적 기회 보장
  • 존 스튜어트 밀: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 생계
  • 케인즈: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순환
  • 밀턴 프리드먼: 시장 효율성을 위한 소득 보장

공통분모: 모든 시민이 생존을 위협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역설: 기본소득을 '좌파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정작 스미스, 케인즈, 프리드먼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진짜 자유시장을 위한 투자

이제 핵심을 정리해보자.

 
스미스, 케인즈, 프리드먼의 공통된 통찰:

  1. 진정한 자유시장은 모든 참여자가 기본적 협상력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2. 생존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다
  3. 따라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은 자유시장의 전제조건이다
  4. 이는 복지가 아니라 경제 전체를 위한 투자다

현대적 번역: 기본소득은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라 더 완전한 자유시장을 위한 필수 투자다.

 
역설적 결론: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기본소득을 지지해야 한다.


좌우 구분의 완전한 붕괴

이제 우리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경제 사상사의 거대한 합류:

  • 18세기 스미스의 도덕철학
  • 20세기 케인즈의 거시경제학
  • 20세기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 21세기 진보진영의 기본소득론

모든 것이 같은 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진짜 대립 구조: 좌파 vs 우파가 아니라 개혁 vs 기득권이다.

  • 개혁 진영: 모든 사람의 자유와 기회 확대 (스미스, 케인즈, 프리드먼)
  • 기득권 진영: 현재 특권 구조 유지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잘못된 시선: 기본소득 = 복지정책 = 가난한 사람 도와주기
 
올바른 시선: 기본소득 = 재정정책 = 경제 순환 복원하기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복지정책으로 보면:

  • 도덕적 논쟁 (게으름뱅이 양산?)
  • 계층 갈등 (왜 내 세금으로?)
  • 시혜적 관점 (불쌍해서 도와주는 것)

 
재정정책으로 보면:

  • 경제적 효과 (소비 증가, 성장 촉진)
  • 공동 이익 (모두에게 도움)
  • 투자적 관점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

 
실제로 케인즈와 프리드먼 모두 '재정정책'에 대한 접근법을 제시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경제 전체를 살리려는 것이다.


혁명은 계속된다

200년 전 스미스가 시작한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케인즈가 진단한 자본주의의 모순도 여전히 존재한다.
프리드먼이 꿈꾼 진정한 자유시장도 아직 오지 않았다.
 
공통된 꿈:

  •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고
  • 행정 효율성이 극대화되며
  • 경제 순환이 건강하게 작동하는 사회

현실: 아직도 복잡한 관료제가 판치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많은 사람이 생존 위협에 시달린다.
 
우리의 과제: 그들의 미완성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방법: 기본소득을 복지가 아닌 재정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고: 200년 전 혁명가의 마지막 메시지

다음 편에서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애덤 스미스가 2025년 대한민국에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상상해볼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시장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200년 전 혁명가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다음 편 예고: "200년 전 혁명가의 마지막 메시지 - 스미스를 스미스에게 돌려주자"


이전 편 : 애덤 스미스는 좌파 진보주의자다 (3부) - '완전경쟁시장=공산주의적 균형?'
다음 편 : 애덤 스미스는 좌파 진보주의자다 (5부) - 그가 사랑한 급진좌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좌파 진보주의자다 (5부) - 그가 사랑한 급진좌파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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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됩니다. 도둑맞은 혁명가를 되찾는 마지막 여정에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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