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서치/새로운 세대는 정말 퇴화하고 있는가?

2부: 현상의 분석 - 새로운 정보 생태계의 작동 원리

딸기카레 2025. 6. 26. 13:10

들어가며

1부에서 우리는 젊은 세대의 변화를 기존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의 한계를 살펴봤다.

 

이제 그들이 실제로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가치 판단은 일단 유보하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 밈 문화와 비선형적 문명 구축

압축적 의미 생성의 혁명

2024년 한 해 동안 틱톡에서 바이럴된 밈의 개수는 수천 개에 달한다. 하나의 밈이 탄생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수백 가지로 변주되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12시간이다.

 

예를 들어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같은 표현은 복잡한 상황의 개별성을 단 세 글자로 압축한다. "팩폭(팩트 폭격)"은 직설적 진실 말하기를 하나의 동사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표현이 만들어지고 정착되는 과정을 보면, 젊은 세대의 언어 창조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다.

 

새로운 문명의 구축 과정

더 극단적인 예시는 2024년 하반기 폭발적 인기를 끈 'Chill Guy'다. "그냥 여유롭게 있는 개"라는 단순한 캐릭터에서 시작된 이 밈은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구축했다.

 

선형적 관점에서 보면 원본 → 패러디 → 변주 → 소멸의 단순한 생명주기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본에서 수백 개의 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뻗어나가며, 각 가지마다 독립적 세계관을 형성한다. 직업별 Chill Guy, 상황별 변주, 각국 문화 반영 버전들이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2차, 3차 창작물들은 원본을 능가하는 문화적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팬아트, 굿즈, 게임 캐릭터화, 심지어 철학적 해석까지... 결국 원본 작가도 예상 못한 거대한 문화 생태계가 구축된다.

 

이는 전통적 창작의 일방향 구조(작가 → 독자)와 완전히 다른 다방향, 동시다발적 집단 창작이다. 마치 언어나 종교가 발전하는 방식과 유사한 새로운 문명 구축의 양상을 보여준다.

 

집단 지성의 새로운 형태

밈의 생성과 변주 과정은 사실상 집단 창작이다. 원본 아이디어를 누군가 제시하면, 수천 명이 각자의 맥락에서 변형하고 재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임팩트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버전들이 자연스럽게 선별된다.

이는 전통적인 창작 과정 - 개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방식 - 과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다. 더 민주적이고, 더 빠르며, 더 다양한 관점이 반영된다.


2. 숏폼 콘텐츠의 정보 압축 기술

고밀도 정보 전달의 완성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의 15-60초 영상들을 분석해보면, 놀라운 정보 밀도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짧은 영상 안에 음성, 자막, 배경음악, 시각적 효과, 제스처, 표정 등 다층적 정보가 동시에 전달된다.

 

예를 들어, 요리 레시피를 다루는 30초 영상은 재료 소개, 조리 과정, 완성품 시연, 맛 표현을 모두 담으면서도 시청자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편집된다.

 

더 극단적인 사례는 소위 '결말포함' 영상들이다. 2시간짜리 영화나 드라마를 10-15분으로 압축한 이런 영상들은 종종 원본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재미없다고 평가받는 작품도 젊은 세대가 축약해놓은 요약판에서는 매우 재밌어진다. 이는 단순히 '빨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만을 추려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고도의 편집 능력을 보여준다.

 

시각적 문법의 진화

젊은 세대는 새로운 시각적 문법을 개발했다. 빠른 컷 편집, 다중 화면, 텍스트와 이미지의 동시 제시 등을 통해 기존 영상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들에게 '집중력 부족'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지만, 실제로는 다중 정보 스트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나의 화면에서 여러 정보를 병렬적으로 흡수하는 방식은 순차적 정보 처리와는 다른 차원의 인지 능력이다.


3. 알고리즘 기반 개인화된 정보 우주

큐레이션에서 개인화로

과거에는 신문 편집자나 방송 PD가 '중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대중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알고리즘이 개인의 관심사와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소비한다.

이는 정보 소비의 근본적 변화다. 모든 사람이 같은 뉴스를 보던 시대에서, 각자가 완전히 다른 정보 우주에서 살아가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필터링 능력의 고도화

역설적이게도, 정보 과부하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필터링 능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하루에 수백 개의 콘텐츠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빠르게 선별하는 능력은 필수 생존 기술이 되었다.

"스키밍(훑어보기)"으로 비판받는 정보 처리 방식도, 사실은 제한된 시간과 인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적응 전략으로 볼 수 있다.


4. 쏠림 현상과 창조의 양극화

대세 추종과 허브 노드 경쟁의 동시 존재

젊은 세대는 분명히 부족화된 대세 추종의 경향성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창조적 시도들도 실제로 하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사례는 'Wing'이라는 한국의 비트박서다. 비트박스 문화는 꽤나 역사가 축적되었는데, 그 방향은 비트를 쪼개고 빠르게 구사하는 스킬적인 측면의 경쟁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Wing은 돌연 느린 비트로 음악성을 강화하고, 하나하나의 소리의 퀄리티를 높임으로써 일약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쏠림의 양면성

쏠림은 두 가지 양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대세 추종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지만, 그러한 관심을 받는 허브 노드가 되고자 하는 욕망도 커지게 되었다. 오히려 공백지대에서 새로운 허브 노드가 되려는 노력이 새로운 장르적 창설에 이르는 결과도 만들어내고 있다.

 

네트워크 이론적으로 보면, 허브 노드가 되려면 기존 허브들과 완전히 다른 차별화가 필요하다. 모두가 A 방향으로 갈 때, B 방향의 유일한 존재가 되면 독점이 가능하다. 쏠림이 심해질수록 "빈 공간"이 더 명확해지고, 그 공간을 노리는 창조적 시도들이 더 극단적이고 혁신적이 될 수밖에 없다.


5. 사회 구조 변화의 투사체로서의 젊은 세대

선행하는 사회적 변화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의 비선형적 사고와 행태가 이들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구조 변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던 현상이 세대에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미디어, SNS,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회 전반의 정보 소비 패턴, 성과주의와 효율성 중심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결과 중심 사고방식, 실시간 소통과 빠른 피드백을 요구하는 플랫폼 경제의 산물... 이 모든 것들이 젊은 세대에게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사회 변화의 센서

젊은 세대는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변화하고 있던 사회의 가장 민감한 센서이자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며 그 환경이 요구하는 능력들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체화한 세대다.

 

기성세대가 부분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을 이들은 완전체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퇴화"가 아니라 현재 사회가 실제로 요구하는 능력에 대한 최적화다.


현상 읽기의 새로운 관점

지금까지 살펴본 현상들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고, 그 규모와 영향력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젊은 세대의 특성"으로 보는 것은 현상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압축적 정보 처리, 비선형적 사고, 집단 지성 활용, 창조적 차별화 시도들은 모두 현재 사회 구조가 요구하고 보상하는 능력들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현상이 기성세대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 변화의 양면성을 인정하면서도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관점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