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문해력이라는 밈의 탄생
갑자기 등장한 단어
"문해력"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게 언제인가? 나는 2010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는 이 단어를 써본 적도 없고, 의미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글쓰기를 좋아했으며, 나름 국내 최고 학부를 졸업한 이른바 '먹물'이다. 하지만 "문해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글을 잘 읽고 쓰는 능력" 정도로 말했다. 굳이 따지면 "독해력"이나 "어학 실력" 같은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단어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교육계에서, 언론에서, 일상 대화에서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누가 이 담론을 시작했을까
누가 이 단어를 처음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단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등장한 시점이 겹친다는 사실이다.
2010년대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SNS가 일상화되며, 젊은 세대의 소통 방식이 급격히 변화한 시기다. 텍스트 메시지는 짧아졌고, 이모티콘과 줄임말이 늘어났으며, 영상 콘텐츠가 텍스트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점에 "문해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우연일까?
기성세대식 밈의 탄생
생각해보면 "문해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기성세대식 밈이 아닐까?
젊은 세대가 "갑분싸", "케바케", "팩폭" 같은 압축적 표현으로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듯이, 기성세대는 "문해력"이라는 단어로 자신들이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세대의 변화를 정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이 이상하다" → "문해력이 떨어진다"
"우리 때와 다르다" →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
"이해할 수 없다" → "문해력 교육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문해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성세대가 적응하기 힘든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폭발적인 새로운 문명에 대한 저항감, 혹은 구분짓기를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담론의 정치성
"문해력 저하"라는 담론에는 은밀한 권력 관계가 숨어 있다. 누가 "올바른 문해력"을 정의하는가? 무엇이 "제대로 된 글 읽기"인가? 이런 기준을 누가 만들었는가?
이는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y)가 2001년 제시한 Digital Native(디지털 원주민)와 Digital Immigrants(디지털 이민자) 개념으로 더 명확해진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와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로 "이주"한 세대 사이의 근본적 차이 말이다.
문제는 "문해력"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주로 Digital Immigrants, 즉 기성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아날로그 시대의 텍스트 처리 방식을 "올바른 문해력"의 기준으로 설정한다. 선형적이고 논리적인 글 읽기, 긴 텍스트에 대한 집중력, 맥락적 이해 능력... 이 모든 것들이 "좋은 문해력"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Digital Native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30초 영상에서 다층적 정보를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능력, 밈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시각적 언어를 해독하는 능력은 왜 "문해력"에 포함되지 않을까?
결국 "문해력 저하"라는 진단 자체가 Digital Immigrants가 Digital Native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일 수 있다.
관점 전환의 필요성
"문해력"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의심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 개념이 등장한 배경, 이 담론을 주도하는 세력, 그리고 이 기준으로 평가받는 대상들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문해력 저하"가 아니라 "문해력 개념의 진화"일지도 모른다. 아니, 더 나아가 "문해력"이라는 틀 자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지적 능력의 등장이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는 정말 퇴화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는 도구 자체가 낡은 것일까?
이제부터 이 질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