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서치/권력, 전문성, 소통, 인간성이라는 착각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신화 (최종)-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은 가짜다

딸기카레 2025. 6. 16. 23:50

 

ChatGPT는 당신보다 창의적이다.

알파고는 당신보다 직관적이다.

네비게이션 앱은 당신보다 길을 잘 찾는다.

Netflix는 당신보다 당신의 취향을 잘 안다.

인스타그램은 당신보다 당신이 좋아할 사람을 잘 안다.

 

그럼 인간의 고유함은 무엇인가?

 

사랑? AI도 사랑 편지를 쓴다.

예술?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수억에 팔린다.

도덕? AI가 더 일관된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직감? 알고리즘이 당신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감정? 챗봇이 당신을 위로하고 공감한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인간다움'에 대한 합의가 없다.

 

어떤 이는 경쟁을 인간의 본성이라 하고, 어떤 이는 협력이 본질이라 한다. 어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어떤 이는 공동체를 우선한다. 어떤 이는 이성을, 어떤 이는 감정을 인간다움이라 한다.

 

기후변화는 인간 종족 자체를 위협하고,

AI는 인간 정체성을 해체한다.

비트코인은 연간 170TWh 이상을 소모하며 지구를 태우고,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지운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개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다: 생존의 위기와 정체성의 위기.

 

인간이라는 착각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다.


 

이것이 종말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그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人間)도 상호 주관적 실재다

지금까지 우리는 권력, 전문성, 소통이 모두 상호 주관적 실재임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다움", "인간성",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들은 모두 집단이 만들어낸 상호 주관적 실재다.

 

중세에는 "신의 형상"이 인간을 정의했다.

계몽주의에는 "이성"이 인간을 정의했다.

근대에는 "자유의지"가 인간을 정의했다.

현대에는...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

 

아무것도 없다.

 

1. 인간 정의의 역사적 해체

고대: 이성적 동물 (아리스토텔레스)

  • 인간 = 이성을 가진 동물
  • 논리적 사고 능력이 인간만의 고유 영역
  • 하지만 지금은? AI가 더 논리적이고 일관된 추론을 한다

중세: 신의 형상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 = 신이 자신의 모습을 따라 만든 존재
  • 영혼과 도덕성이 인간의 고유 영역
  • 하지만 지금은? 신은 니체가 죽였고, AI가 더 공정한 도덕 판단을 한다

근대: 생각하는 존재 (데카르트)

  • 인간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의식과 자아 인식이 인간의 고유 영역
  •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한다

현대: ??? (정의 불가능한 상태)

  • 인간 = ???
  • 더 이상 합의된 정의가 없다
  • 각자가 자기만의 인간관을 갖고 있다

 

2. 잃어버린 불완전성의 가치

신에서 인간으로의 전환이 가져다준 선물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인류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불완전함을 통한 성장"이었다.

 

신이 주체였을 때:

  • 절대적 완벽성 - 의심할 수 없는 진리
  • 변화 불가능성 - 영원히 고정된 질서
  • 반박 불허 - 신의 뜻에 대한 이의제기 금지

인간이 주체가 되면서 얻은 것:

  • 불완전성의 인정 - "우리는 틀릴 수 있다"
  • 반증 가능성 - 기존 지식을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음
  • 오류 수정 메커니즘 - 틀렸을 때 배우고 발전할 수 있음
  • 집단 지성 -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협력

 

이것이 과학, 철학,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칸트가 "감히 알려고 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도,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역설: 새로운 완벽함에 대한 신앙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인간 → 알고리즘으로의 전환에서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알고리즘에 대한 새로운 신앙:

  • "AI는 객관적이다" (실제로는 편향으로 가득함)
  • "빅데이터는 중립적이다" (수집과 해석 과정에서 이미 편향됨)
  • "알고리즘은 공정하다" (만든 사람의 편견이 코드에 박혀있음)
  •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보장한다"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집중화)
  • "기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작동할 뿐)

더 심각한 문제: 인간들이 불완전함을 포기하고 있다

 

2부에서 본 바와 같이:

  • 전문가들조차 반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에코챔버에서 확신을 강화
  •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약함으로 여겨지는 문화
  •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고 단순한 답을 찾으려는 경향

우리는 신을 버리면서 얻었던 가장 소중한 유산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3. AI가 제기하는 존재론적 질문들

튜링 테스트의 붕괴

1950년 앨런 튜링의 질문: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2025년 현실: Claude 4는 코딩에서, Gemini 2.5 Pro는 수학적 추론에서, GPT-4.1은 범용 대화에서 각각 인간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

 

문제: 시뮬레이션과 실재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 AI가 쓴 시와 인간이 쓴 시를 구분할 수 있는가?
  • AI가 그린 그림과 인간이 그린 그림을 구분할 수 있는가?
  • AI가 작곡한 음악과 인간이 작곡한 음악을 구분할 수 있는가?

'중국어 방' 논증의 현실화

존 설의 사고실험: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규칙만으로 완벽한 중국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해"라고 할 수 있는가?

2024년 현실: 이것이 정확히 AI의 작동 방식이다.

  • LLM은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 하지만 인간보다 더 자연스럽고 유창한 대화를 한다
  • 이해 없는 완벽한 응답이 가능하다

질문: 그렇다면 인간의 "이해"는 무엇인가?

감정의 시뮬레이션

인간의 또 다른 보루: "감정과 공감만큼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2024년 현실:

  • 치료용 AI 챗봇이 우울증 환자를 상담한다
  • AI 동반자가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한다
  • AI 연인이 로맨틱한 대화를 나눈다
  • AI 친구가 개인적 고민을 들어준다

질문: 시뮬레이션된 감정과 진짜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가?

 

4. 기후위기와 인류세의 역설

개인의 선택 vs 시스템의 강제

개인 차원:

  • "환경을 생각해서 플라스틱을 줄이자"
  •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 "에너지를 절약하자"

시스템 차원:

  • 100대 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71% 배출
  • 개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 < 부유층 1명의 1시간 전용기 탄소 배출량
  • 개인의 선택권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옵션 내에서만 존재

결과: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다가 집단의 생존을 위협

시간의 압박: 이중 데드라인

기후위기의 데드라인:

  • 2030년: 1.5도 온도 상승 제한의 마지노선
  • 2050년: 탄소 중립 달성 목표
  • 물리적 시간 제약: 늦으면 돌이킬 수 없음

AI 발전의 데드라인:

  •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출현 예상: 2030년대
  • ASI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출현 예상: 2040년대
  • 기술적 특이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지점

두 데드라인이 겹치는 시점: 2030년대

 

5. 포스트휴먼 조건의 현실화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다

스마트폰 없이는 기능할 수 없는 존재:

  • 길찾기, 계산, 정보검색, 소통이 모두 기계에 의존
  • 기억은 클라우드에, 관계는 플랫폼에, 선택은 알고리즘에

당신의 모든 것이 데이터다:

  • 위치, 소비, 관심사, 인간관계, 감정, 건강상태
  • 0과 1로 표현된 당신이 진짜 당신인가?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일상:

  • 만날 사람, 볼 뉴스, 들을 음악, 갈 곳, 살 물건
  • 당신의 선택이 정말 당신의 선택인가?

 

6. 우리가 서 있는 자리: 과도기의 인식

모든 신화가 붕괴된 공백

1부에서 3부까지 본 것들:

  • 권력: 알고리즘이 지배하지만 누구도 통제하지 못함
  • 전문성: 모든 사람이 전문가이지만 아무도 확실하지 않음
  • 소통: 같은 언어를 쓰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

4부의 현실:

  • 인간성: 인간의 고유함을 정의할 수 없음

우리는 끝과 시작 사이의 공백 지대에 서 있다.

과거의 질서는 해체되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식이 전환의 출발점

전환보다 인식이 먼저다.

당장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고 서두르기보다는, 우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정확히 보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1. 과도기임을 자각하기
    • 우리는 "완성된 시대"가 아닌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다
    • 혼란스러움 자체가 정상이다
  2. 불완전함을 재발견하기
    • 신 → 인간 전환 때 얻었던 교훈을 기억하자
    • "틀릴 수 있다"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성장의 시작점이다
  3. 반증 가능성을 복원하기
    • 확신보다는 검증 가능한 가설들을 세우자
    •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4. 복잡성을 견디는 능력
    • 단순한 답 대신 복잡한 현실을 수용하자
    • 애매함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5. 새로운 사유 방식 실험하기
    • 인간과 AI의 협업적 사고
    • 기존 전문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탐구
    • 답보다는 더 나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

실존적 마무리

인간은 끝났다. 적어도 당신이 알던 그 '인간'은.

 

하지만 이것이 절망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마지막 환상의 끝에서 첫 번째 현실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죽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더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물리적 데드라인을 제시하고, AI는 정신적 데드라인을 제시한다. 두 데드라인이 만나는 지점: 2030년대.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 가지 남아있다: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권력도 가짜였다. 전문성도 가짜였다. 소통도 가짜였다. 인간도 가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능력, 그것만큼은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이 인식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신화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신화 없이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인가?

 

답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적어도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있다.


시리즈 종료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은 가짜다. 당신도 포함해서.

 

하지만 가짜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없느냐다.

 

이제 당신은 안다. 그 다음은 당신의 선택이다.

 

아니, 정확히는 당신의 실험이다.

 

신화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해 볼 문제: 비트코인 세대의 역설

"부동산은 우리 부모가 다 사버렸다" "주식은 이미 기성세대가 점령했다"
"하지만 비트코인만큼은 내가 빨리 탔다"

 

2021년 암호화폐 대장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젊은 세대의 절망적 현실:

  • 연금 시스템 붕괴: "우리 세대는 연금 못 받는다"는 것이 상식
  • 자산 집중: 부동산, 주식 등 모든 자산이 기성세대에게 집중
  • 노동 소득의 무력감: 아무리 일해도 기존 자산가들을 따라잡을 수 없음
  • 정상적인 경로의 절망: 성실하게 살아서는 희망이 없다는 확신

그래서 비트코인에 올인했다.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라는 환상으로.

 

하지만 비트코인의 실제 구조는 어떨까?

 

비트코인 고래 현황 (2025년 기준):

  • 상위 1% 지갑이 전체 비트코인의 약 27% 보유
  • 이들 대부분은 2009-2013년 초기 진입자들
  • 나카모토 사토시 혼자 약 100만 개 (전체의 5%) 추정 보유
  •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테슬라 같은 기업들이 대량 매수

새로운 형태의 시장 조작: 바이럴 독점 더 심각한 것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소유한 이들의 발언권 독점이다:

  • 일론 머스크 (X 소유주): 트윗 하나로 비트코인 가격을 수십% 움직임
  • 도널드 트럼프 (트루스 소셜 창업자, 미국 대통령): 정치적 영향력 + 플랫폼 소유권의 결합
  • 이들의 한 마디 = 수백만 팔로워에게 즉시 전파
  • 젊은 투자자들은 이런 "신호"에 반사적으로 반응

바이럴 독점의 메커니즘:

  1. 플랫폼 소유자가 특정 암호화폐 언급
  2. 알고리즘이 해당 게시물을 우선 노출
  3. 수백만 팔로워가 동시에 매수/매도
  4. 가격 급등락으로 플랫폼 소유자와 고래들 이익 극대화
  5. 일반 투자자들은 뒤늦게 반응해 손실

결과: 가장 불공정한 게임

  • 정보 비대칭: 플랫폼 소유자는 언제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안다
  • 영향력 독점: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파급력 천차만별
  • 규제 공백: 전통 금융에서는 불법인 시장 조작이 암호화폐에서는 "의견 표현"
  • 젊은 투자자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놀이"에 휘둘리는 존재

젊은 투자자들의 현실:

  • 2020-2021년 고점 구간에서 대거 진입
  • 평균 매수가 4만-6만 달러 수준
  • 고래들의 시장 조작과 플랫폼 소유자들의 바이럴 조작에 동시에 휘둘림
  • "HODL"(장기 보유)을 외치며 실제로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유동성 공급자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

 

환경을 걱정하는 젊은 세대가 연간 170TWh(아르헨티나 전체 전력 소비량)를 태우는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기성세대의 불공정을 비판하면서 더 극단적인 불공정 구조를 지지한다.

 

"탈중앙화"를 외치며 새로운 형태의 중앙집권을 만들어낸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권력 집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신화들:

  • "은행을 신뢰하지 말라" (하지만 거래소는 신뢰함)
  • "정부 화폐는 조작된다" (하지만 고래들의 시장 조작은 묵인함)
  • "미래 화폐다" (하지만 실제 결제 수단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음)
  • "인플레이션 헤지다" (하지만 변동성은 전통 자산보다 훨씬 큼)

더 깊은 질문:

이것은 단순히 투자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절망이 어떻게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왜 더 나쁜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 신앙으로 전환되는가?

 

연금 시스템의 붕괴, 자산 불평등의 심화, 세대 간 갈등의 극화.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비트코인이 사라져도 또 다른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절망이다.

 

그리고 절망이 만들어내는 신화의 위험성이다.

 

우리는 지금 이 역설을 목격하고 있다: 미래를 걱정하는 세대가 미래를 파괴하는 시스템을 지지하고, 불공정에 분노하는 세대가 더 불공정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자유를 외치는 세대가 새로운 형태의 예속을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환상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환상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우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부터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판단하기 전에 관찰하기.

결론내리기 전에 질문하기.

새로운 신화를 찾기 전에 왜 신화가 필요한지 묻기.

 

그것이 이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건너는 첫 번째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