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라는 환상(신뢰의 블럭체인 네트워크)(3부) -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은 가짜다
"자유"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는 규제 철폐를, 어떤 이는 사회 보장을 생각한다.
"정의"라는 말은? "평등"은? "진보"는? "보수"는?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한국어를 쓰지만 소통할 수 없다.
번역이 필요한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끼리의 말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해리스는 같은 언어를 썼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말했다.
지지자들은 각자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는 같은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같은 통계를 보고 정반대 결론을 내린다.
같은 뉴스를 읽고 상대방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공통 언어가 없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 같은 현실을 공유하는 능력을 잃었을까?
소통도 상호 주관적 실재다
하라리의 통찰을 다시 떠올려보자.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는 상호 주관적 실재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양쪽이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언어의 의미: 사전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것
논리의 규칙: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가 만든 것
사실의 기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이 인정한 것
대화의 예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학습한 것
그런데 이 모든 소통의 전제조건들이 무너지고 있다.
1. 하이트의 바벨탑 붕괴 진단
소셜미디어 이전 vs 이후
조나단 하이트는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의 바벨탑을 무너뜨렸다고 진단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인 하이트는 도덕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2020년 이후 소셜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소셜미디어 이전 (1990년대까지):
- 느린 소통: 편지, 전화, 대면 대화가 중심
- 숙고할 시간: 반응하기 전에 생각할 여유
- 중재자 존재: 언론, 정치인, 지식인이 여론 중재
- 공통 정보원: 모든 사람이 비슷한 뉴스 소스 공유
소셜미디어 이후 (2000년대 이후):
- 즉석 반응: 읽자마자 댓글, 리트윗, 공유
- 감정적 확산: 논리보다 감정이 더 빠르게 전파
- 중재자 실종: 누구나 발언할 수 있지만 누구도 조정하지 않음
- 파편화된 정보: 각자 다른 알고리즘으로 다른 정보 소비
공통 언어의 상실
같은 단어가 집단마다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자유":
- 보수: 정부 간섭 최소화, 시장 자율
- 진보: 사회적 불평등 해소, 복지 확대
- 청년: 취업 걱정 없는 삶
- 기성세대: 자수성가할 기회
"정의":
- 보수: 법과 질서, 원칙 준수
- 진보: 사회적 약자 보호, 구조 개선
- 피해자: 가해자 처벌
- 가해자: 관용과 용서
"민주주의":
- 여당: 선거로 선택받은 정당의 정책 추진
- 야당: 견제와 균형을 통한 권력 제한
- 시민: 내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
- 정치인: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
같은 언어를 쓰지만 소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2.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와 알고리즘 편향
알고리즘의 가면: 객관성이라는 거짓말
캐시 오닐이 경고한 대로, 알고리즘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편향으로 가득하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뉴스 배치, 포털 검색어, 유튜브 추천 등에서 지속적인 편향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컴퓨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편향된 데이터와 개발자의 편견이 코드에 반영되어 있다.
데이터 독재의 구조적 분석 : 하라리의 경고, 데이터 독재의 시대
낡은 공동체, 사라진 온기 (7부) : 하라리의 경고, 데이터 독재의 시대
유발 하라리(יובל נח הררי)의 경고, 데이터 독재의 시대- 알고리즘이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방식액체화를 넘어선 해체,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원자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구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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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정정치의 시대
정치가 치료의 영역이 되다
리처드 세넷이 30년 전 예측한 '친밀성의 폭정'이 현실이 되었다. 정치가 정책 토론이 아닌 개인적 매력과 감정적 호소의 영역으로 변화했다.
복잡한 경제·외교 정책도 "마음이 있나 없나", "굴욕적이다 vs 현실적이다" 같은 감정적 프레임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무페의 '적대적 정치'
샨탈 무페는 건전한 민주주의(상대를 '적수'로 보는 경쟁)와 불건전한 민주주의(상대를 '적'으로 보는 제거 대상)를 구분했다.
한국 정치는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세넷과 무페의 통찰에 대한 참고자료 : 감정정치의 시대
낡은 공동체, 사라진 온기 (8부)(feat.한국) : 감정정치의 시대
세넷(Richard Sennett)과 무페(Chantal Mouffe)의 진단, 감정정치의 시대- 정치가 치료의 영역이 될 때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일어난 충격적 사건그날 계엄령 선포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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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랫폼이 만드는 구조적 갈등
플랫폼별 갈등 증폭 메커니즘
X(트위터): 논쟁이 트래픽을 만드는 구조
- 140자 제한 → 복잡성 압축 → 오해 증폭
- 리트윗 → 맥락 제거 → 의미 왜곡
- 해시태그 → 진영 결집 → 대립 심화
- 실시간 타임라인 → 즉석 반응 → 성찰 시간 박탈
유튜브: 극단적 콘텐츠가 시청시간을 늘리는 구조
- 추천 알고리즘 →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유도
- 장시간 시청 → 몰입과 세뇌 효과 증대
- 댓글 시스템 → 동조 압력과 집단 사고 강화
인스타그램: 완벽한 삶을 경쟁하게 만드는 구조
- 이미지 중심 → 현실 왜곡과 과시 경쟁
- 스토리 기능 → 일상의 정치화
- 팔로워 수 → 영향력의 수치화
틱톡: 사고할 시간을 빼앗는 15초 문화
- 짧은 영상 → 깊이 있는 사고 방해
- 무한 스크롤 → 중독성과 수동적 소비
- 바이럴 챌린지 → 맹목적 모방 문화
이런 현상은 바라바시가 발견한 네트워크의 수학적 법칙과 하라리가 경고한 데이터 독재 구조에서 나온 필연적 결과다.(참고 : 하라리의 경고, 데이터 독재의 시대 )
5. 밈이 된 소통
소통의 밈화
이제 소통 자체가 밈처럼 작동한다:
- 바이럴 확산: 논리적 타당성보다 감정적 임팩트로 퍼짐
- 변형과 재생산: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변형된 버전만 남음
- 부족주의적 소비: 같은 진영끼리만 공유하고 소비
- 검증 없는 존속: 틀린 정보도 네트워크에서 영구 보존
언어 게임의 변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 게임'이 플랫폼별로 파편화되었다:
- 학술계: 논문과 학회 발표의 언어
- 언론계: 기사와 보도의 언어
- 정치계: 국정감사와 토론의 언어
- 유튜브: 썸네일과 자극적 제목의 언어
- 틱톡: 15초 영상과 해시태그의 언어
- 온라인 커뮤니티: 은어와 밈의 언어
각 플랫폼의 언어 게임이 호환되지 않는다.
6. 닫힌 계 vs 열린 계: 소통의 블록체인
소통의 블록체인 구조
소통도 이제 블록체인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닫힌 계 (같은 진영) 내에서의 소통:
- 완벽한 이해와 공감
- 암묵적 전제의 공유
- 빠른 합의와 결속
- 상호 신뢰와 지지
열린 계 (다른 진영) 간의 소통:
- 기본 전제부터 불일치
- 같은 단어, 다른 의미
- 대화 불가능성
- 상호 불신과 적대
진영별 '객관적 진실'
각 진영은 자신만의 '객관적 진실'을 가진다:
진보 진영:
- 믿을 만한 언론: 한겨레, 경향신문, JTBC
- 신뢰하는 전문가: 시민사회 출신, 진보 성향 학자
- 공유하는 팩트: 사회적 불평등, 기득권 특혜
- 추구하는 가치: 평등, 정의, 포용
보수 진영:
- 믿을 만한 언론: 조선일보, 동아일보, TV조선
- 신뢰하는 전문가: 시장경제 지지자, 보수 성향 학자
- 공유하는 팩트: 경제 성장, 안보 위협
- 추구하는 가치: 자유, 책임, 질서
청년 진영:
- 믿을 만한 매체: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 신뢰하는 인플루언서: 또래 크리에이터, 셀럽
- 공유하는 관심사: 취업, 주거, 연애
- 추구하는 가치: 개인의 행복, 공정한 기회
각 진영 내에서는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진영 간에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는 아렌트가 경고한 "원자화"와 선스타인이 발견한 "에코 챔버"가 결합된 극단적 형태다.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상태에서 각자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
에코 챔버와 원자화의 결합 : 아렌트의 경고, 소셜미디어 시대의 원자화
낡은 공동체, 사라진 온기 (4부) : 아렌트의 경고, 소셜미디어 시대의 원자화
한나 아렌트(Johanna Cohn Arendt)의 경고, 소셜미디어 시대의 원자화- 연결되어 있지만 더 위험하게 고립된 사람들 1933년 베를린, 한 유대인 여학생이 본 충격적 장면그날 한나 아렌트는 베를린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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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합의 프로토콜의 해체
전통적 합의 메커니즘의 붕괴
과거의 합의 과정:
- 권위 있는 중재자 (언론, 학계, 법원) 존재
- 공통의 정보 기반 공유
- 합리적 토론의 규칙 인정
- 다수결 또는 전문가 판단 수용
현재의 상황:
- 모든 중재자가 편향되었다고 의심받음
- 각자 다른 정보를 소비하고 믿음
- 토론 규칙 자체를 부정
-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음모론 제기
대안적 정보원의 난립
기존 권위가 무너지자 수많은 대안이 등장했다:
- 유튜버: 구독자 수백만의 1인 미디어
- 팟캐스트: 장시간 심층 대화 표방
- 개인 블로그: 전문가 못지않은 분석력 자랑
- SNS 인플루언서: 실시간 현장 정보 제공
문제: 무엇이 신뢰할 만한 정보원인지 판단할 공통 기준 부재
8. 윤석열 탄핵이 보여준 소통 불가능성
같은 사건, 완전히 다른 해석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사태는 소통 불가능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같은 사건을 "민주주의를 구하려는 시도" vs "민주주의 파괴 시도"로, "헌정질서 회복" vs "정치적 보복"으로 정반대로 해석했다.
각자 다른 정보원(진보/보수 매체, 소셜미디어)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고 있음이 드러났다.
- 진보 성향: "명백한 위헌 → 당연한 탄핵"
- 보수 성향: "불가피한 선택 → 정치적 음모"
- 소셜미디어: "밈과 패러디 → 선악 구조"
이는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 체계로 현실을 번역한 결과다.
이 현상의 감정정치적 배경 역시 앞서 살펴본 감정정치의 시대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마무리
합의는 불가능해졌다.
과학적 사실조차 정치적 입장이 되었다.
기후변화도, 백신도, 경제 지표도 믿음의 문제가 되었다.
당신도 그 중 하나다.
당신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도 결국 당신이 선택한 정보원에서 나온 것이다.
당신이 신뢰하는 전문가도 당신의 편견을 확인해주는 사람이다.
당신이 공유하는 뉴스도 당신의 세계관에 맞는 것들이다.
하라리가 맞았다. 소통도 상호 주관적 실재다. 사람들이 "소통되고 있다"고 믿을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이 경쟁한다. 각 진영은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진실'들이 네트워크에 영원히 보존된다. 블록체인처럼, 밈처럼, 검증 없이.
우리는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틀렸다. 하지만 이 모순을 견딜 수 없다.
바벨탑은 무너졌다. 공통 언어는 사라졌다.
우리는 같은 현실에 살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바벨탑은 무너졌다. 공통 언어는 사라졌다.
우리는 같은 현실에 살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 볼 문제: 새로운 언어의 창조
혐오로 악명 높은 한국의 극단적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는 입문자를 위한 "단어사전"을 공지사항으로 올려놓고 있다.
그 사전에는 수백 개의 단어들이 정의되어 있다. 기존 한국어 단어들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완전히 새로운 조어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 기존 단어의 성별을 뒤바꾼 표현들
-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새로운 은어들
-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독창적인 조합어들
- 감정 표현을 위한 창의적인 의성어들
이 사전은 무려 100개가 넘는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만든 것처럼.
이것이 2025년의 현실이다.
각 집단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각자의 "사전"이 있고, 각자의 "문법"이 있고, 각자의 "의미 체계"가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그들은 이 언어가 "더 정확하다"고 확신한다는 것.
기존 언어가 편향되었고, 자신들의 언어가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들의 단어 정의가 더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언어 체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동시에 수십, 수백 개의 커뮤니티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올바른 언어"를 만들어내면서.
결과: 닫힌 계 내에서 신념화된 세계관(신뢰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
이제 우리는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물리적으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언어다.
더 놀라운 것은 각 집단이 이런 상황을 "언어 개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더 정의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소통의 완전한 불가능.
당신도 지금 이 사례를 읽으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저런 극단적인 집단들이 문제야."
바로 그것이다. 당신도 당신만의 "올바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보수는 진보의 언어를 "선동적"이라고 하고,
진보는 보수의 언어를 "기득권적"이라고 한다.
청년은 기성세대의 언어를 "꼰대적"이라고 하고,
기성세대는 청년의 언어를 "버릇없다"고 한다.
모든 집단이 자신만의 "정확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집단의 언어는 "잘못되었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소통 불가능성의 최종 단계다. 같은 언어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상태.
각자가 자신만의 완벽한 신뢰 시스템을 구축했다. 검증 없이, 의심 없이, 외부와 단절된 채로.
우리는 더 이상 바벨탑을 공유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만의 견고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일관적이고, 확실하다.
문제는 그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결될 필요도 없고, 연결되고 싶지도 않다.
"블록체인의 무서운 점은
닫힌 계 내에서의 신뢰성은 높일 수 있지만,
열린 계와 차단되어 있고,
그 경직성을 쉽게 부술 수 없다는 역설이다."
다음 편에서는 당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그 정체성 자체가 어떻게 마지막 환상에 불과한지 밝혀보겠다.